부끄러움에 대하여
열정청년
입력시간 : 2017. 02.02. 00:00





부끄러움. 최근 들어 이 단어를 자주 떠 올린다. 어렸을 땐 엄마에게 혼나고 내복만 입은 채로 아파트 복도에 서 있는 게 부끄러웠고 낮은 수학점수가 부끄러웠고 IMF로 갑자기 어려워진 집안 사정이 부끄러웠다. 나의 이러한 부끄러운 마음을 누군가가 알아챌 때면 그 부끄러움은 두 배가 됐다. 지금 되돌아보면 굉장히 사사롭고 과연 그것이 그렇게 부끄러울 일이었을 까 하지만 그 당시 어린 감수성으론 가슴에 깊이 남아있는 몇 가지 기억들이다. 그렇다면 성인이 된 이후 내가 느끼는 부끄러움은 어떤 게 있을까. 눈이오나 비가 오나 길에 상추며 시금치며 고구마를 가지고 나와 아침부터 저녁까지 물건을 팔고 있는 할머니들을 볼 때 마다 나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내가 방금 마시고 온 4,000원의 커피 가격을 생각하며 고개를 숙이고 그 곳을 지난다. 자신의 몸 보다 높게 쌓은 박스를 리어카에 싣고 가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며 나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200kg을 모아야 1만원 짜리 한 장을 쥘 수 있다고 하니 이 추운 겨울 동네를 몇 바퀴 돌아야 하나. 티비에서 한 달에 만원이면 이 아이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라는 문구를 보며 나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자신의 아픔을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야만 어떠한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그래야만 자신의 지갑을 여는 이들, 그중엔 나도 포함된다. 이러한 내 모습에 고개를 숙인다.

최근 만난 청년활동가들이 한 이야기가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 "사실 나는 지금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하면서 생활하고 있는 데 100%는 아니에요. 98% 행복하다고 할까? 음… 그 2%는 행복하지 않은 많은 이들 때문이에요. 그들을 생각하면 뭔가 100%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에요. 나 혼자가 아닌 모두가 행복해야 진짜 행복한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던 다른 이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혼자 맛있는 것을 먹고 과한 행복감을 느낄 때 나 혼자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이런 생각을 해요. 어떤 이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가식적이지 않나 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겠지만 그들의 눈빛을 보았다면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느끼는 부끄러움이라는 감정과 비슷한 부분을 그들의 이야기에서 보았다.

나는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단순히 개인의 감정이 아닌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당연히 모두가 가지고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감정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 농성 앞에서 폭식 투쟁을 하는 이들은 부끄러움을 몰랐고 인간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 없었다. 이미 드러난 사실들을 모두 부정하며 나는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정부 관계자들 역시 부끄러움 대신 뻔뻔함을 얼굴에 드리웠다. 그리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을 바라보며 그들이 느껴야하는 부끄러움을 시민들이 대신 가슴에 안았다. 우리지역 역시 예외는 아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아낌없이 모든 걸 던지며 지켜온 저항과 대동의 정신을 이제 더 이상 5ㆍ18기념재단에서 찾아볼 수 없다며 쇄신하라고 외치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아직 답하지 않는 그들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매 주 영하의 날씨 속에서도 결코 촛불이 꺼져서는 안 된다며 촛불을 들고 모이는 시민들이 있고 천일이 넘는 기간 동안 그날을 잊지 말자고 동네에서 촛불을 밝히며 도보순례를 하는 부끄러움을 아는 많은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로 인해 세상은 변할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2017년 올 해는 부끄러움을 아는 이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래본다.

노동자의 목숨 값으로는 500만원을 권력자의 자녀에겐 300억 원을 내미는 이들 역시 스스로 고개를 숙이며 부끄러움을 느끼고 세월호 유가족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사과하지 못한 이들 역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그들 앞에서 함께 껴안고 눈물 흘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단기 근로자 양산, 채용특혜, 부당노동행위 등 각종의혹들이 불거지면서 감사를 받고 있는 그들 역시 시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고 받아들이며 진정성 있는 변화를 보여주길 바란다.

나의 이 바람이 그리 큰 욕심은 아니길.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윤동주 시인의 시 한 구절로 이 글을 마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박수민 광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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